임원 회의에서 "전사 AI 도입"을 결정하고 전 직원에게 유료 계정을 지급해주며, 리더로서 할 일을 다 했다는 자부심에 취해있진 않았는가. 미안하지만,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지금쯤 기묘한 '눈치 게임'이 시작되었을 확률이 높다. 신기술을 쥐어준 경영진은 새로운 혁신을 기대하지만, 정작 직원들은 "AI로 일을 빨리 끝내봤자 일감만 더 늘어날 텐데"라며 모니터 앞에서 바쁜 척 속도를 조절하는 데 신경을 쓰는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.

문제는 도구의 부재가 아니다. 업무 재설계가 미비한 것이다.

AI를 전사 도입한 지 1~2년이 지난 기업들에서 공통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.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상위 20%는 업무 처리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. 그러나 나머지 80%는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일하거나, AI가 생산한 결과물을 검토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. (참고: https://www.microsoft.com/en-us/worklab/work-trend-index)

경영진은 AI 도입이 조직 전반의 생산성을 균등하게 끌어올릴 것이라 기대한다.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. 업무 프로세스의 전면적인 재설계 없이는, 기술이 조직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라놓는다.

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. AI로 여유 시간을 확보한 직원들은 그 사실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. 조직이 더 많은 업무를 부과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. AI가 만들어낸 잉여 역량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, 아무도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.

지금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AI 사용법 교육 계획이 아니다. AI 도입으로 확보된 '잉여 시간'을 신사업 기획, 고객 관계, 품질 향상 등 어떤 핵심 가치에 재배치할 것인지, 직무 기술서(R&R)를 업데이트해야 한다. AI 도입의 성패는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관리자의 설계 역량에 달려 있다.